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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불쾌한 골짜기를 넘고 넘어 도달한 버추얼 휴먼

 

태초에 아담이 있었다

 

사이버가수 ‘아담’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존재입니다. 1998년 1월 “세상엔 없는 사랑”이란 곡으로 홀연히 나타난 아담은 생년월일과 혈액형은 물론 좋아하는 음식 등 상당히 구체적인 페르소나를 갖췄었어요. 1977년 12월 12일생으로 스무살이었고요, 신장과 몸무게가 각각 178츠에 68Kg로 마른 체형, 그리고 O형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였다고 하네요. 아담은 음원은 물론 뮤직비디오까지 내면서 1호 사이버가수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이버가수 1호 아담의 1집 앨범 커버

 

아담은 3D 그래픽을 활용하고 실제 사람의 목소리를 입힌 형태의 버추얼 휴먼이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몇 분 입 모양을 움직이는 데만 수억 원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아담이 다양한 활동을 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했고, ‘불쾌한 골짜기’라 불리는 현상도 나타나 전폭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로 사망했다는 웃지 못할 루머도 돌면서 아담은 버추얼 휴먼의 한 페이지를 살짝 들춘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

 

사람들이 처음에는 사람을 닮은 로봇(버추얼 휴먼)에 호감을 느끼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해요. 그러다 로봇의 외모나 행동이 사람과 거의 똑같아지면 호감도가 다시 높아진다는 분석을 “불쾌한 골짜기” 이론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1970년에 만든 용어예요.

 

사실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사람들이 로봇이나 3D 게임 등을 접한 후의 반응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어요. 어찌됐든 사람은 ‘사람을 어설프게 닮은 것’을 ‘닮지 않은 것’보다 더 거북해한다는 경향성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캣츠>는 불쾌한 골짜기를 설명하는 단골 예시 중 하나입니다. 뮤지컬에서 사람이 고양이 흉내를 낼 때는 호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얼굴과 몸의 형태만 사람일 뿐 다른 외형을 고양이 특징에서 따온 형상에는 불쾌감을 느낀다고 표현했어요.

 

영화 <캣츠>의 한 장면

 

 

골짜기를 넘고 넘어 도달한 곳은

 

이 원인 모를 불쾌한 골짜기 이론 때문에 콘텐츠 창작자들이 딜레마에 빠지곤 했습니다. 아담도 불쾌한 골짜기에 빠진 불운한 버추얼 휴먼이었어요. 애매하게 사람을 닮은, 사람을 더 닮기엔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인물이었죠.

 

그러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버추얼 휴먼을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버추얼 휴먼인지 진짜 사람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기술이 정교해졌어요. 비용도 크게 절감되었고요.

 

예컨대, 에이아이트릭스가 버추얼 휴먼 만드는 프로세스를 살펴볼게요. 에이아이트릭스는 ‘트윈’ 기술을 이용합니다. 실제 인물과 거의 흡사한 가상의 복제인간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실제 인물의 음성과 영상 데이터를 저장해요.

 

이때 중요한 건 ‘최대한 적은 양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겁니다. 실제로 에이아이트릭스는 인물에 대한 영상 촬영에 1시간, 100문장 가량의 음성 녹음에 30분 정도 들입니다. 그리고 약 3일간 이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켜요. 짜잔-! 이제 인공지능은 이 가상의 [트윈]에게 무슨 말이든 시킬 수 있어요. 실제 인간의 목소리와 말투로 영어나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버추얼 휴먼이 사람처럼 활동할 시대

 

버추얼 휴먼은 사람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인기 인플루언서가 되어 수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면서 대형 광고를 찍기도 하죠. 불쾌한 골짜기를 통과한 버추얼 휴먼의 미래는 일단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의 인스타그램

 

 

화려한 입소문이 필요한 연예계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의료계에서도 버추얼 휴먼이 활용될 수 있어요. 이미 의료계에선 다양한 비대면 플랫폼이 활성화되는 등 의료진과 환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는 형태의 진료가 늘고 있는데요, 버추얼 닥터가 등장하면 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버추얼 닥터는 현실의 의료진과 거의 흡사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불쾌한 골짜기 현상 같은 건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환자들이 가상 의사의 비주얼에 거부감이 없다는 것은 매우 좋은 신호겠지요.

 

 

우리는 점점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로 진입하게 될 거예요. 거기서 수많은 버추얼 휴먼을 만나게 될 거고요. 여러가지 수반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거란 우려도 있는데요. 인공지능 기술이 사람의 삶을 훨씬 더 유용하고 이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윤리의식에 기반한다면 더 좋은 세계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